고양이와 함께 읽는 테드 창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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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고양이와 함께 읽는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숨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테드 창
작성일: 2020.01.28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란 책을 읽고 SF 장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어로 하면 ‘공상’과학이기 때문에 SF는 늘 내게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SF소설과 일반 소설의 경계는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탄탄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언젠가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SF소설들이 많아져, 나 같은 문과쟁이도 AI라던가 우주여행이 우리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와 같이 산 지 2개월, 집사가 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테드 창이 쓴 두 개의 소설을 읽으며 고양이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3년의 고민 끝에 고양이를 입양했다. 나 외에 아무것도 책임질 것이 없는 삶을 살다가 책임질 생명체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인해) 두 마리를 동시에 입양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도 없고, 조카도 없는 2개월 전의 나라면 이 소설들을 읽고 떠오르는 질문들에 정반대의 대답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키워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만약 아이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이를 낳겠는가? 미래를 알게 되어도 바꿀 수 없다면 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예전의 나는 아이를 낳지도 않을 것이고, 미래의 불행을 알게 되어도 바꿀 수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양이의 수명을 알고도 입양을 결정했다. 이 아이들은 높은 확률로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망설인 3년의 시간도 그 이유가 컸다. 그러나 이제 나는 과거로 돌아가 좀 더 빨리 고양이 입양을 결정할 수 있다면, 이 아이들과 보낸 좋은 기억 때문에 입양을 결정할 것이다. 

삶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큰 틀의 불행과 행복한 경험들은 동시에 존재한다. 세부적인 내용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순간’의 힘을 믿게 되었다. 예상했던 아픔이었어도, 가시만한 상처 하나하나가 늘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과정을 알고, 이것 또한 지나가고 다른 기쁨과 또 다른 슬픔이 온다는 걸 알게 된다면 좀 더 겸허히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미래를 알게 된다고 해도 내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다만 행복한 경험은 오롯이 행복하게 느끼고 슬픈 경험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을 믿고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서 다른 인생의 느낌이 들지 않을까. 

미래를 알지 못하는 지금도 저런 마인드로 살아가면 좋을 텐데 순간순간마다 많이 좌절한다. 이 책에서 배운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는 내게 작은 힘이 되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제일 빠른 길은 어쩌면 조금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고양이들이 회사에 있는 나에게 카톡을 보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일이 늦어져 집에 늦게 가면 ‘괜찮아 잘 있어’라든지, 왜 안 들어오냐며 화를 낸다든지 말이다. 그리고 고양이들이 집 안에서 잠만 자고 있는걸 보면 내가 더 큰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돈을 들여서 영어 유치원이라도 보낼 수 있다면 더 열심히 돈을 벌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나를 떠나 독립한다고 하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어디까지 이 아이들의 독립을 인정하고 지원해줘야 할까? 

내가 살아있는 반려동물에 대해 이렇게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디지언트들이 인간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고양이보다 더 발달한 상호작용이라면 소설에 나오는 일도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OS 업그레이드에 대한 투자를 받기 위해 애나가 엑스포넨셜 사를 만났을 때 그들은 애나가 이미 잭스를 ‘제품’ 이상으로 보고 있다며 투자를 하지 않는다. OS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소프트웨어라도 내가 입히고 먹이고 키우고 상호작용한 객체를 단순한 ‘제품’으로 볼 수 있을까.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은 바이너리 디자이어가 고객들에게 팔려는 것 못지않은 환상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p.237)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감정을 투자하고, 희생하기 시작하면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된다. 나의 고양이들이 내게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