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리더십 형태의 변화
작성일: 2018.07.19
얼마전 회사에서 강연을 하나 들었다. 급변하는 IT시대에서 직장인은 어떤 생존전략을 가져가야 할까에 관한 이야기였다. 강연 말미에는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이야기가 인상깊어서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강연자는 우리 세대에 좋은 리더는 드물고, 우리가 좋은 리더를 못만났더라도 사회가 변함에 따라 변해가는 리더의 역량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리더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내가 꼰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의 낀 세대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생각 하는건 너무 꼰대 같은가 생각을 하며 보수적으로 행동하다가도 어떤 면에서는 단체행동을 강요하거나 마이크로매니징에는 극도의 거부감을 갖는다. 그리고 일 못하는 리더도 싫지만, 공감하고 배려해주지 못하는 리더도 싫다. 효율성을 추구하면서도 공감을 원하는 낀 세대라 할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 할 수록 고민했던 건 본받을만한 여성리더가 없다는 점이었다. 여성 리더를 만날 기회도 적었지만 극소수의 그들은 본받을만한 모습보다는 히스테리, 낙하산, 꼼수, 이간질 등의 모습으로 나를 실망시켰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그러면 본받을만한 남성 리더들은 있는가? 그 때 깨달았다. 성별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 세대가 만나는 대부분의 리더들은 본받을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이 없게도 내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리더의 대부분은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고 혁신을 만들어온 사람보다는 운이 좋은 사람, 정치를 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직원들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고 ‘일만’ 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리더급이 될 수록 냉혈한이 되는 걸까, 타인의 감각에 무감각한 냉혈한일수록 리더급이 될 확률이 높은걸까 고민하게 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났다. 그들은 직원들의 성장보다는 그들의 쓰임을 컨트롤 하는데에 집중했다.
그래서 강연에서 말하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리더가 급변하는 IT환경에서 좋은 리더라는 말이 마음을 더 울렸는지도 모른다. 구글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급변하고 불확실한 환경에서 발언권을 보장하고, 내가 실수를 해도 커버해줄 수 있고, 일을 잘 추진할 수 있다는 심리정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팀이 생산성이 높다는 걸 증명했다고 한다.
불확실하고 빠르게 환경이 변화하고 있고 그 안에서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감수성, 공감, 배려 같은 덕목이 일을 잘 추진할 수 있는 부스터로 쓰인다는 생각을 했다.
강연자분은 자율 출근제나 재택근무처럼 일을 자유롭게 하는 환경을 만들었을 때, 어뷰징을 막는 방법은 일하는 시간을 체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예전에는 군대처럼 나를 따르라 형식이 리더십이었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일이 잘 되게 범퍼 역할을 해주는게 다른 리더십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나를 따르라 형식이면 사람을 모아야 하지만 후자는 사람이 자연스레 모여든다. 강요 보다는 자발성을 유도해서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다면 앞에 나서서 이끌고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이상적인 리더십이 아니다.
‘리더’라는 말이 이끄는 사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다들 사람들을 모으고 이끌어야 리더라는 생각의 함정에 빠져있는건 아닐까?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일을 되게 하는 사람도 나는 사람들을 잘 이끄지는 못하니까 리더는 되기 힘들거야라며 자신의 한계를 규정한다.
앞에서 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만 리더가 될 수 있고 정치질과 쇼잉에 능한 사람이 리더로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혁신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을까.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유튜브 영상을 통해 빠르게 배우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브이로그로 찍어서 공유하는 밀레니얼세대들에게 가만히 서서 내 말을 들어보라고 하는 강요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그들에게 일의 형태는 직장 안에 국한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버튼은 얼마든지 쉽게 누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