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기업 되기 vs 스몰 자이언츠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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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자이언츠,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100대 기업 되기 vs 스몰 자이언츠 되기

스몰 자이언츠가 온다 – 보 벌링엄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 이본 쉬나드  
작성일: 2023.11.04

가끔 기업이 유기체 같다고 생각 한다. 구성원이 5명, 30명, 50명, 200명, 500명, 1천 명일 때의 회사는 다른 회사 같다. 지금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 구성원이 400명 정도였다. 6년이 지난 지금은 구성원이 2천 명으로 훌쩍 늘었고,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는 기분이다. 사실 매년 다른 회사 같았다. 회사의 문화가 너무 빨리 변하는 게 우려된다는 말이 계속 나왔고, 채용을 홀딩하고 문화를 다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문화는 변했다. 

‘스몰 자이언츠가 온다.’ 책을 읽으며, 스몰 자이언츠가 되는 건 100대 기업에 드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규모의 확장을 추진하는 것보다 내면을 다지고, 본질을 세우고 나아가는 게 더 어렵다. 그리고 변수도 많다. 창업자가 사업은 처음이라 지분의 중요성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성장 과정에서 지분을 현명하지 못하게 나눴을 수도 있다. 지분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자금이 필요하여 투자 받으면서 지분이 희석됐을 수도 있다. 책에 나온 라이처스 베이브 레코즈처럼 회사의 수익모델이 인적자원(싱어송라이터인 디프랑코)에 의존도가 높아 수명이 정해져 있는 특이한 케이스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운이 좀 안 좋을 수도 있다. 강력한 경쟁 기업이 나타나거나, 세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져 신념을 꺾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질을 지키기 위해 스몰 자이언츠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가끔 나는 안분지족 하면서 살려고 해도, 가만히 있으면 밀려나 버린다는 위기감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개인이 이렇게 느끼는데 기업은 오죽할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가는 길이 달라진다. 그 선택이 그 당시에는 작은 선택으로 느껴질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멀리 온 후에 돌아보면 간극은 매우 커져 있다. 스몰 자이언츠는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와 신념을 따라 선택해 온 기업들이다. 그래서 ‘자이언츠’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살아가고 일하는 데 있어서 철학과 신념을 거듭 생각하고 그 의미를 소중히 여겼기에 걸을 수 있었던 길이었을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이 어려운 스몰 자이언츠의 길을 착실하게 걷고 있다. 몇 년 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책을 집어 들 때, 파도가 치면 서핑 하러 나가는 자유로운 영혼의 회사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그런 내용이 언제 나오나 계속 목차를 뒤적였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파타고니아는 환경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확고하게 펼쳐 나가는 기업이다. 한때 ESG가 붐이었을 때, 마케터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는 추천 글이 꽤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케팅 캠페인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한 기업의 원칙과 경영방침에 가까운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의류를 만들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환경 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운영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니까. 그때 책을 덮으며 파타고니아는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모든 직원들이 이 기업의 철학에 동의하는 문화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 이후, 작년인 2022년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환경 비영리단체에 자신의 지분을 모두 기부했다. 이본쉬나드는 지분을 기부하면서 ‘나는 내일 죽을 수도 있지만 파타고니아는 50년은 더 옳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다.’라는 말했다고 한다. 파타고니아는 1위 의류업체는 되지 못하겠지만 (않겠지만) 가장 오래 지속되는 스몰 자이언츠 기업으로 남지 않을까. 죽고 나서 남은 것이 몇천억 조인 것 보다, 미술품 컬렉션인 것보다, 지구를 남기겠다는 말이 더 거대한 메시지로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