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과 세 편의 사랑영화
작성일: 2020.01.06
회사에서 벗어나 열흘 남짓의 겨울방학을 가지는 동안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콘스탄트 가드너,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결혼 이야기다. 영화, 특히 사랑 영화를 거의 안 보는 내가 세 편의 사랑 영화를 이렇게 단기간에 본 건 특이한 일이었다. 그냥 우연의 연속이었다.
콘스탄트 가드너
첫 번째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는 허지웅의 책을 보다가 이 문구에 꽂혀서 바로 보았다.
그런데 요즘 살짝 고민이 생겼다. 나의 진심은 너의 진심과 다르다. 맞다. 그러나 나의 진심과 너의 진심 결국 공히 ‘진심’인 것이다. 그 개별의 진심들을 모두 싸잡아 무시하는 게 과연 옳은 태도일까. (중략)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딜레마를 만날 때마다 찾아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콘스탄트 가드너>다.
아프리카에서 인권운동을 하던 아내가 죽는다. 남편은 외교관이다. 그가 처참하게 훼손된 아내의 주검 앞에 선다. 처음에는 그녀의 부정을 의심한다. 바람을 피우다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아프리카를 둘러싼 제약회사의 야욕과 음모, 부조리,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다가 야기된 아내의 죽음과 거짓말들에 대해 깨닫는다.
남자는 아내를 믿지 못했다. 아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아내의 진심을 마주한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세상 무엇보다 더 사랑했다. 남자는 아내의 진심에 화답해야 한다.
(허지웅 – 버티는 삶에 관하여)
충분히 배우자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일단 목숨 걸고 그녀의 신념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녀는 나를 배신했다고 믿으면 모든 게 쉬운데, 그게 평소의 그다운 선택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다운 선택에서 한없이 빗나가는 되는 사랑 이야기를 보았고, 수긍했다.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
두 번째 영화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는 인터넷에 올라온 캡처의 결말이 궁금해서 봤다. 이혼을 앞둔 부부, 딸이 아빠는 어떻게 엄마를 만났는지 묻는다. 아빠는 세 명의 여자와 만난 이야기를 말해줄 테니 어떤 이야기가 엄마를 만난 이야기인지 맞혀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극의 전개에 따라 이 사람이 엄마일거야, 이 사람이 엄마였으면 하는 식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 인연이 한 번 끝나면 다시 만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세 명의 여자와 아빠는 계속 얽히고 섥힌다. (그래야 영화가 계속되지만 말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끝난 인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의 어느 때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결혼 이야기
세 번째 영화 ‘결혼이야기’는 좋다고 하는 사람이 주변에 동시에 세 명이나 있어서 보았다. 보는 내내 추천한 사람들마다 언제가 좋은 타이밍인지 궁금했다. LA의 이혼과 양육권 법률이 우리나라와 얼마나 차이 나는지 생각해보느라 그런가. 엄청 클라이막스에서의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 벌게진 연기와 감독의 표현력에 감탄하기는 했다. 그것보다도 이 영화가 주는 것은 묘한 위로였다. 누구에게나 끝으로 가는 과정은 최악이고 밑바닥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예술인이나 평범하고 미숙한 사람에게나 밑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니 밑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에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묘한 위로였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시기에 밑바닥을 보였다면 그저 그 시기가 어긋났을 뿐이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언제나 그 시기는 올 수 있다.
'삶은 결국 어떤 시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의 일
세 영화 모두 ‘삶은 결국 어떤 시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라는 말을 떠오르게 했다. 어떤 사람의 어떤 시기와 다른 사람의 어떤 시기가 맞물려서 나타나는 화학작용에 대해 우리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세 영화 모두 인간관계, 특히 사랑에 있어서 완전한 엔딩이나 완결은 없구나. 우리는 그저 계속 상호작용하며 흘러갈 뿐이라는 생각에 빠지게 했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이혼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그 말처럼 성숙해진다는 건 밑바닥을 찍기 직전에 그걸 잘 추스르는 것일까. 밑바닥을 찍고도 잘 올라오는 사람이 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운이 좋게도 밑바닥을 찍지 않을 시기와 사람이 계속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누군가 때문에 너무 괴롭다면 어떤 사람의 조금 나쁜 시기 혹은 나의 조금 나쁜 시기(아니면 둘 다)에 그를 만났을 뿐이다. 나도 상대방도 미워하지 말고 그저 그 시기에서 조금 멀어지길 기다려야지. 별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