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부터 1948년까지 서울에 살았던 영국인 메리의) 기록과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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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목걸이

(1917년부터 1948년까지 서울에 살았던 영국인 메리의) 기록과 시선

메리 린리 테일러 – 호박 목걸이
작성일: 2019.07.03

호박목걸이는 1917년 한국에 살게 된 영국인 메리의 한국 생활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을 펼치고 혼란스러웠던 것은 책 내용이 역사서도 아니고 에세이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시기가 틀린 고증이 있으며, 인물이나 지명이 정확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 역사서는 아니다. 에세이에 가깝기는 하지만 감성보다는 요즘 말로 tmi (too much information) 같은 내용의 나열이 이어져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1917년부터 42년까지 구한말의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을 날것 그대로 풀어낸 이야기라 생각하니 오히려 그녀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며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엮여 있는 만큼 나도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어보았다.

1.
희로애락이 담긴 집. 

‘딜쿠샤’는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지만, 이 집에서 겪은 일들에는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집이 벼락을 맞기도 하고, 각종 파티가 벌어지기도 했으며, 집에 갇혀있다가 쫓겨나다시피 떠나게 되었다가 남편이 아끼던 의자 하나만을 겨우 찾을 수 있기도 했다. 집이란 이렇게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끔 예전에 살던 집들의 사진을 볼 때면 그 시절의 사건들이 떠오른다. 집은 이렇게 우리의 희로애락을 품어주며 존재한다.

2.
기록의 힘. 

그냥 흘러가는 하루라도 기록하면 힘이 된다. 메리가 이렇게 글을 남기지 않았다면 딜쿠샤에서 있었던 일들은 단지 그녀의 가족과 지인들만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현 시대의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다. 메리의 기록이 남아있었기에 우리도 같이 딜쿠샤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3.
인생은 회전목마.

읽는 내내 이 말이 입에 맴돌았다. 메리는 배우로 아시아를 돌며 공연을 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나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기도 한다. 하인 몇 십명을 거느리며 다양한 수집품을 모으며 살다가도, 갑자기 쫓기듯 떠나며 수집품을 다 잃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다시 학교를 다니며 미술을 배우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의 ‘때’, ‘~해야 하는 시기’라는 말에 자주 갇힌다. 나이가 들어서는 학교를 다시 다니기는 좀 그렇고, 신혼 생활은 어때야만하고, 가족은 이런 방식이어야 한다 등등등. 그러나 메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관념들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경험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은 회전목마.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고, 언제나 돌고돈다. 그러니 갇히지 말고 자유로워지자.

4.
사람을 계급으로 나눠 생각하는 시선 

책에서 신기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던 부분은 메리나 메리의 친구가 한국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자본가로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한국 사람을 본인보다 낮은 계급으로 생각하는 듯한 시선들이 종종 보인다. 그녀의 친구들(심지어 성직자)도 파티에서 한국 하인들에 대해 비하하는듯한 농담을 한 걸 웃긴 에피소드로 적어놓았는데, 웃기기보다는 불편했다. 가끔 사람들을 볼 때 계급을 나눠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학벌, 직업,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 등등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나도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태도가 어쩔 수 없었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해도 이 태도를 문제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 사회는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5.
컨텐츠를 퍼트리는 힘 

직업적인 이유로 컨텐츠를 퍼트리는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테일러가 3.1운동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국에 사는 ‘미국인 기자’였기에 가능했다. 한국인이 세계에 알리는 것보다 미국인이 알리는 게 더 파급력이 있었을 것이다. 4번에 계급에 관해 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내 인스타그램에 컨텐츠를 올리는 것과 100k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컨텐츠를 올리는 것의 파급력은 다르다. 같은 컨텐츠라도 컨텐츠의 버즈량을 달라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6.
호박목걸이 

책을 읽는 내내 나오는 바퀴 모양의 커다란 자국이 있는 호박목걸이가 뭔지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메리 린리 테일러의 호박 목걸이

책에 내내 등장하는 메리 린리 테일러의 호박 목걸이
*출처: 우리문화신문 – ‘딜쿠샤’라는 집의 비밀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