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마케터의 일’ 써내려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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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의 일

마케터의 일 – 장인성
작성일: 2018.09.19

대학생 때, 마케팅을 배우기 시작하며 나만의 마케팅 노트를 만들었다. 노트 한 권에 챕터별로 내용을 요약하고, 마케팅 동아리에서 스터디를 하면서 내용을 보충했다. 계속 알게 되는 내용이나 사례를 그 챕터에 이어서 계속 채워나갔다. 세월이 흘러 마케팅 협회에서 말하는 마케팅의 정의조차 변하면서 그 노트는 쓸모없어졌지만 그 노트를 만든 경험이 나에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다. 

‘마케터의 일’이라는 책은 그렇게 만들고 싶은 노트 같은 책이었다. 공감하는 내용도 있고, 내 생각과 다른 내용도 있고, 새롭게 배운 내용도 있다. 그 내용을 책에 쓰고 또 메모지에 써서 계속 덧붙여나가고 있다. 그러면 이 책의 제목대로 나만의 ‘마케터 일’ 이라는 책이 새롭게 완성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 책에 더 붙여 넣고 싶은 챕터들을 적어본다. 

1. 성실함도 재능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케팅을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성실함에서 나오고,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것도 성실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일하면서 깨닫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마케터의 성실함이란 다음과 같다. 

(1) 내가 맡은 일의 디테일을 끊임없이 살피는 성실함

(2) 내가 맡은 제품/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더 필요한 건 없을지 계속 고민하는 성실함

(3) 마케팅 트렌드, 기술적 요소에 대해 공부해나가는 성실함 

가끔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사소한 디테일에 감탄할 때가 있다. 문구 하나, 전화번호를 입력할 때 디폴트 옵션으로 해놓은 값, 진행도를 체크할 수 있는 상단 바 같은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누군가가 시키기보다 계속 디테일을 챙기고, 더 나은 경험을 만들겠다는 성실함에서 나온다. 끊임없이 디테일을 살피고, 어떻게 더 채워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다른 서비스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부지런히 보는 것을 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좋은 마케터가 될 것이다. 결국 좋은 마케터는 성실함에서 나온다. 

높은 지능도 재능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성실한 태도를 가진 게 더 큰 재능일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귀찮은 걸 싫어해서 일할 때 더 쉬운 방법, 더 편한 방법을 찾으려고 잔머리를 많이 쓴다. 그러다가 내 꾀에 내가 빠져 큰 코 다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예 자동화시킬 수 없는 일이라면 꾀부리지 말고 그저 묵묵하게 하는게 방법이라고 반성한다. 

성실한 태도는 언제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태도가 몸에 배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성실한 태도가 몸에 배지 않으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도 대충대충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비단 마케팅뿐만 아니라 우리가 감탄하는 건물들, 미술 작품들 모두 끝없는 반복과 성실함에서 나왔다. 반복만이 가져다주는 것들이 있다.

2. 사람과 세상을 향한 무한한 호기심

사실 나는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상담을 하는 심리학은 아니고, 사람이 어떤 과정으로 사고하는지 연구하는 인지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인지 심리학자가 되지 못했어도, 마케터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 만족한다. 마케터라는 직업도 결국 사람과 세상을 연구하는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해서이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고 과정에 대해 생각한다.  마케팅도 한 명 한 명의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우리 제품을 사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관심을 가져본다. 전혀 관계없는 맘카페 글도 읽어보고, 야구룰은 하나도 모르면서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가끔씩 읽어본다. 굳이 트렌드가 아니더라도 개발 관련 업무를 요청하면 이건 왜 이런 프로세스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는 알려고 해본다. 가끔 외계어 같은 알고리즘도 한 번쯤은 읽어보려고 해본다. 그런 경험들이 점처럼 모인다. 컨셉을 잡고, 프로모션 아이디어를 내고, 광고 카피를 짜고 채널을 선정할 때 선처럼 이어지는 경험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세계는 아직 작지만 좋은 마케터가 되기 위해 내가 팔아야 할 제품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려고 한다. 

3.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을 고생시키지 말자

마케터의 일을 읽으면서 조금 고민했던 포인트다. ‘작게, 짧게, 빠르게’ 반복해야 한다는 큰 뜻에는 동의하지만, 나는 일하면서 되도록이면 협업하는 부서들을 고생(a.k.a. 삽질)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마케터가 갖춰야 할 자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게임회사에서 일할 때는 마케팅 부서의 결정에 따라 런칭 일정이 바뀔 때가 있었다. 클라이언트, 서버, 원화가, 모델러, 이펙터, 대행사, 매체사, 웹디자이너, 코더, 웹개발자, GM, 고객센터, 회계팀. QA팀, 미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팀까지 마케팅팀이 짠 런칭 일정에 맞추려고 개인과 팀의 일정을 희생한다. 

그런데 내가 일정을 잘못 산정해서 일정을 갑자기 바꾸게 되거나 결과가 안 좋았을 때 작은 나비의 날갯짓으로 시작되는 나비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항상 미리미리 계획을 짜고, 관련 팀과 싱크를 맞추는 노력에 리소스를 쓰는 강박 아닌 강박이 생겼다. (구글 캘린더를 3개로 나눠놓고 체크한다거나…) 작은 예를 들어보자면 광고 소재를 제작해서 세팅하려고 할 때도 내가 오후 6시에 광고 소재 체크와 세팅 정보를 전달하면, 대행사 직원, 매체사 직원의 일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들에게 당연하게 야근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염두하여 일정을 세워야 하는 것도 나의 역할 중 하나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 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고생시키면 다음 프로젝트 때 내 고생으로 돌아온다. 효율을 내기 위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데 한계를 두진 않으려고 하지만 내 리소스를 더 쓰더라도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쿠션을 만들어 놓으면 내가 힘들 때 나도 그 쿠션에 기댈 수 있다.  

4. 실패해도 괜찮아. 쪽팔려도 괜찮아. 여유를 갖자.

이 부분은 마케터의 일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 부분이다. 내가 바빠서 허우적대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볼 일이 있을 때 눈치 보는 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일도 괜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마케팅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일이 많은데 최소한의 여유를 만들어 놓지 않고 빽빽하게 일 할 때가 많다. 그러다 갑자기 튀어나온 일들을 해결하고 나면 기다리고 있는 건 결국 야근이다. 

이 일의 근원은 어디서 나올까 생각해보면 ‘성과를 못 내면 어쩌나, 내가 다 알고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 개의 생각에서 나온다. 10할 타자가 없는 것처럼 항상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없다. (대표님은 항상 좋은 성과를 바라실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몰라도 되는 사소한 것들은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위임해야 한다. 중요도가 낮은 일들은 과감히 투 두 리스트에서 지워야 한다. 그래서 투 두 리스트에서 ‘포기’ 섹션을 만들어 보았다. 중요도가 낮은 일들을 그 섹션으로 살포시 옮겨놓았다. 그렇지만 더 옮겨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야근을 했기 때문이다. 

5. 마케터는 전문가가 될 수 있는가?

사실 며칠 전에 책을 다시 읽고 쓰려는 이야기는 4번이 끝이었는데,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되어 계속 생각이 나서 5번으로 적어본다.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 ‘마케팅은 40살 정도 되면 감 떨어져서 끝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래서 마케터의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서 마케터가 되지 않으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아직 40살이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40살이 넘으면 트렌드에 뒤처지기 때문에 마케터로서는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짧은 생각이라고 느낀다. 마케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케터도 전문성을 가지고 커나가는 직업이다. 
연차를 거듭할 수록 이런 상황에는 이런 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적어지더라도 이 아이디어가 고객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가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럴 때는 어떤 채널을 사용해야 좋다, 하다못해 내가 지금 찾아야 하는 자료는 어디서 찾아야 한다는 것까지 더 빠르게 알게 된다. 1번에서 말한 성실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마케터의 경험축적은 무시 못 하는 전문성을 만든다. 그 중 핵심적인 전문성은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방법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에 대한 방법론이다. 이러한 경험을 축적한 마케터는 스스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써놓고 보니 무언가 오지랖이 가득한 것 같다. 원치 않은 오지랖을 부리면 꼰대라고 하던데… 그래도 다음에 올 사람에게 이런 오지랖을 한 번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내가 취업준비를 할 때 선배 언니가 회사 일에 바쁜데 시간을 쪼개서 자소서 첨삭도 해주고 밥도 사주면서 면접 준비도 도와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언니한테 왜 이렇게 나를 잘 도와주는 거냐고, 내가 취업하면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어보았다. 언니는 언니가 취업 준비를 할 때, 선배들이 이렇게 도와줬으니까 나를 도와주는 거라고, 나도 후배들을 이렇게 도와주면 된다는 20대 중반에 걸맞지 않은 현자 같은 말을 했다. 그 때 그 말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도 내가 한 ‘맨땅에 헤딩’을 후배들이 좀 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그래도 우리는 늘 맨땅에 헤딩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