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작성일: 2018.10.26
1.
“오늘의 한세계는 여기까지.”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뷰티인사이드’의 대사다.
여주인공 한세계는 한 달에 한 번 일주일간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인종, 성별, 나이 상관없이 랜덤으로 변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한 달에 한 번 몸이 바뀌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숨기 시작하면서 한세계는 제멋대로 잠적한다는 오명을 얻는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삶을 살아보며 천의 얼굴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된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으며, 한세계가 여러 사람의 몸으로 살면서 여러 가지 세계를 만나듯, 사람마다 자신만이 가진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계를 잘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관점으로 스티븐 킹은 글 쓰는 법을 풀어나간다. 좋은 글은 멀리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는 이야기의 한 꼭지를 잡아 그 세계를 잘 풀어가는 것.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2.
모두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모든 세계가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퇴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전형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전형적인 삶을 살아간다. 좋은 대학교만 가면 된다고 입시에 목숨을 건다. 대학교에 가면 바로 취업을 위한 토익 공부에 돌입한다. 토익 준비하고, 대외활동하고, 어학연수 갔다 오는 것까지 코스처럼 진행된다. 취업 장벽을 넘고,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이가 차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면 아이는 언제 낳는지 물어보고, 아이를 낳으면 둘째는 언제 낳는지 물어본다. 답안지가 존재하는 삶을 기대하고, 염원한다. 이 코스에서 벗어나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걸로 취급할 뿐이다. 전형적인 삶을 잘 살아가다가 문득 두려워졌다. 내가 마흔 살쯤 되었을 때, 내 삶이 너무 전형적이었다고 후회하는 삶이면 어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험이란게 회사라는 집단 안에서 틀에서 벗어난답시고 비위 못 맞추는 바른말을 하다가, 그것도 설득 못 하고 좌절하고 또 좌절하는 것뿐일까. 그러면서도 한 사람에게는 각자의 세계가 있다고, 그 세계는 특별하다고 위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3.
전형적인 삶을 살게 되는 건 겁이 나기 때문이다. 다른 삶을 산다는 게 틀린 삶을 사는 것으로 취급받으니까 인생이라는 시험지에 점수를 매기듯 살아간다. 나는 원래 겁쟁이였다가도 모험을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최고 겁쟁이 줄에 서 있었다. 무언가를 잃는 것을 두려워한 순간부터였을까? 겁쟁이 줄에 서서 지금의 안정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나의 세계가 너무 작다고 불안해하고 있다.
4.
글쓰기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이 전형적인 인생이 괜찮은 걸까 생각한 것처럼 글쓰기 방법론에서 인생을 사는 방법론을 발견한다. 스티븐 킹은 일단 인물과 발단을 찾아내고 쓰기 시작하면 스토리가 점점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일단, 겁내지 않고 사건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좀 덜 겁낼 때, 조금씩 잃어보는 걸 감수할 때,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겁내지 않고 사건을 시작하려고 하는 건 무엇이냐면 일단 나부터 생각하는 것이다. 무조건 들어주고,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거절 못하는 버릇을 고쳐보자. 일에 묶여있는 시간보다 나에게 쏟는 시간을 늘려보자. 엄청난 일을 할 것처럼 말해놓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결심을 한다.
그래도 나에겐 작은 발단이다. 사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래서 더 안정을 추구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말한다. ‘좋은 소설은 스토리에서 출발해서 주제로 나아간다.’ 일단 좋은 소재 하나씩을 삶에 던져놓고 써나가다 보면 점점 나만의 세계가 만들어지겠지. 나는 나의 세계를 계속 확장해나갈 것이다. 그 세계를 풀어내는 글을 써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