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인간 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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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찌질한 인간 구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작성일: 2019.05.01 

많은 사람들이 익히 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구보씨는 어떻게 보면 좀 찌질하다. 선자리 상대에게 쉽게 혼담을 건네지도 못했고, 그 여자를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다 놓쳐버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여자친구가 돈 때문에 그와 사귀는 거라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그러니 총명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나이 드신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걸 알면서도 서울 곳곳을 새벽 두 시까지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가기도 한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 소설의 큰 축은 그가 돌아다니며 공간마다 풀어놓는 번민들이다. 

그가 풀어놓는 번민들과 음울한 단상들이 요즘의 독립출판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해야 하고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이나 퇴사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들이 인기를 얻는 건 ‘나만 힘든 게 아니야, 나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아니야’하는 공감 때문이 아닐까. 시대는 변해도 사람들은 늘 불안해하고 자신만의 찌질한 면들을 간직하고 살아가며 그 모습들이 내게는 오히려 인간적이라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늘 찌질함을 간직하고 산다. 

구보는 자신이 늘 다니는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생각을 풀어놓는다. 공간공간마다 자신만의 자잘하지만 큰 고민들이 떠 있는 듯했다. 가끔 어떠한 공간에 가면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내가 다녔던 대학 근처에 가면 철없는 청춘처럼 밤새 술을 마실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고민이 있을 때마다 앉아 울던 구석 벤치를 찾을 때면 나도 모르게 센치해지기도 한다. 구보가 그랬듯 공간과 감정은 함께 공존한다. 지금 내가 머물고, 마주하는 공간들을 훗날 접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으로 이 공간을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