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8.11.01
1,500원의 행복, ‘과자예찬’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참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참고 참아도 한 번 손대면 꾹꾹 참아왔던 욕구를 한 순간에 터트리게 하는 무언가
내가 그 무언가는 ‘과자’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토피가 있고,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고, 우유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까다로운 아이였다. 그래서 엄마는 좋은 음식들만 가려 먹게 했는데, 그마저도 입이 짧아 많이 먹지 않았다. ‘항상 다섯살이니까 다섯 숟가락만 먹자’라는 말과 반찬 투정해서 혼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가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언니와 둘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엄마가 못 먹게 하던 것, 못하게 하던 것들을 내 맘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의 제일은 과자와의 만남이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하던 자극적인 맛들! 과자와 불량식품에 푹 빠져서 엄마 몰래 과자를 먹는 횟수와 양이 점점 늘어났다. 과자를 많이 먹으면 살만 찌는 게 아니라 키도 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갑자기 키도 크고 살도 쪘다. 과자 때문에 키가 크다니 얼마나 먹었는지 짐작이 가는가. 그때부터 과자는 나를 파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였다.
어렸을 때는 아토피가 있으니 과자를 먹으면 당연히 아토피가 심해졌다. 그리고 밀가루도 소화를 잘 못 시켜서 속도 안 좋았다. 그래도 과자를 먹었다. 과자가 몸에 얼마나 나쁘고 과자에 얼마나 첨가물이 많이 들어있는지 설명하는 책(링크)이 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과자가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알게 되어 과자를 줄이거나 끊는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아주 진지하게 읽고, 과자가 얼마나 몸에 나쁜지, 왜 과자에 중독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과자를 먹었다. 맛있으니까.
사람의 뇌는 행복을 느낀 후에 비슷한 행복을 여러 번 반복해서 경험하면 그 행복감에 대해 무뎌진다고 한다.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행복은 비슷하게 반복될수록 그 빛을 잃어간다. 그래서 더 좋은 행복, 더 새로운 행복을 원한다. 과자가 주는 행복, 엄마로부터 벗어난 자유와 엄마가 없다는 상실감을 채워주던 과자가 주는 행복은 같은 과자를 10번 정도 먹으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다른 과자를 먹으면 된다. 아주 빠르고 쉽게 다른 종류의 행복이 생겨난다.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편의점에 행복들이 다른 종류로 쌓여있는 것이다.
나는 내 삶에 ‘청교도 같은 삶’이라는 별명을 붙이곤 한다. 내 삶은 거의 루틴하게 흘러간다. 회사에서는 숨 가쁘게 일을 하고 퇴근하고 운동을 간다. 운동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고 일을 더하거나 책을 읽고 잔다. 딱딱 짜여진 삶이 답답해 보여도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나는 이 삶이 나를 보호해준다고 여긴다. 술이나 담배에도 취약한 유전자를 타고나서 거의 하지 않는다. 핑계 같지만 이런 삶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요소이자 탈출구는 역시 과자다. 안정된 삶을 추구하면서도 너무 안정되면 재미없어 하는 모순적인 내게 가장 손쉽게 호기심을 채워주는 존재다.
한 때는 행복을 거창한 곳에서 찾으려 했다. 행복을 찾기 위해 화려한 곳을 찾아다녔고, 나를 과시하려고 했다.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많은 물건들을 사들이거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해 보았다. 하지만 행복감은 쉽게 사라지고 나는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더 큰 무언가를 추구하려 한다는 걸 알았다.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내 곁에 있는 과자 한 봉지에서 행복을 꺼낼 수 있다. 그 행복이 시시해지면 다른 맛을 먹으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과자를 끊지 못한다.